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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무사 – 문광훈이라는 저자를 발견한 기쁨
자기쇄신적 기쁨
좋은 책은 이 결의마저 지워버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처음부
터 없었던 것처럼, 좋은 책에는 다짐이나 결의, 교훈이나 주장마저 휘발되어 있다. 그것은 단
지 희미한 여운으로 흔적을 남긴다. 고전은 어떤 것도 강제하거나 설파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떤 메아리가 되어 독자의 심금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자임
하거나 자부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말없는 지속이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사랑의 의지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을까? 신선한 감각과 탄력적 사유 그리고 다채
로운 표현은 곧 삶의 열정 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김우창의 사유가 일체의 어긋남과 치우침 혹은 기울어짐을 경계하는 사유, 다시 말해 생
각함에 비뚤어지고 못된 것을 지우는 사무사의 사유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의 비평 정신
은 사무사의 정신이다. 사무사의 비평 정신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우고 마음을 비우는 데
서 시작한다.
'사邪'란 '간사하다', '기울다', '치우치다'는 뜻이다. 즉 대상을 간사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파악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울어지거나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생각에 전략과 술수가 들어가
면 편향된다. 그러나 전략과 술수를 부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생각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고 이 의도가 사고의 일정한 경사를 야기한다. 그러니까 의도만으로도 사고는 비뚤어질
수가 있다. 발터 벤야민이 '의도 없음' 혹은 '의도를 지우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조건이라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편향된 사고로는 대상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세계는 단순히 분석과 진단과 설명과 주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분석과 아울러 이 분석이 놓
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려할 때, 우리는 세계의 전체, 그 온전한 실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혹은 이렇게 파악된 것이 대상의 일부라고 해도, 이 일부는 결핍과 누락을 헤아리는 이런 정
신으로 인해 전체에 열려 있을 수 있다. 이 열려 있음이 곧 감각의 풍요성과 사고의 객관성
그리고 판단의 공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행동과 윤리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지만,
마음을 비워내는 영육의 훈련에서 실천은 이미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철저성
○ 자기물음
김우창은 모든 주어진 물음을 그것이 생겨난 맥락을 헤아리면서도 이 물음을 자기 질문 속에
서 변용시킨다. 다른 논자나 저자의 문제의식도 있는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
루는 문제와 연관하여 일정하게 변조시켜 받아들이고, 이렇게 자기 언어에 담아 그것을 그가
말하려는 논리와 사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므로 자기 물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물음의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 자기 아집
속에 빠져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안을 그 자체에서 사고할 뿐만 아니라 그 사안이 자
리한 상황 아래 사고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체성이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부단히 "회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것, 그리고
주체의 재구성이 곧 주체가 처한 상황 자체의 재구성이라는 점이다. 상황은 주체를 규정하면
서 이 주체로 하여금 상황을 규정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자아는 자기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개방적이다.
주어진 관념이나 기준을 마치 교리문답에서처럼, 그대로 반복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
자적으로 질문하는 것이고, 이 문제를 자기 자신의 기준 아래 자발적으로 고찰하고, 그 자신
의 책임 아래 스스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문제적 자기 물음은, 적어도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그 자체로 주체의 창조적 실천성을
증거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적 문제 제기 혹은 자기 물음 속에서 개체와 일반,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자유와 필연의 함수관계는 새롭게 재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감정의 정확성
- 선험적 도덕의지의 폭력성
"사회나 정치의 문제"란 "어떠한 의지를 행동에 옮기는 것에서가 아니라, 어떻게 어떠한 통일
적인 행동 의지가 사회적으로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데서 시작하"는일이다. 단순히 각 개인
이 확신하는 바를 사회에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다른 사
람과의 상호주관적 관계를 통해 최선의 상태로 점차 조율해가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직관적, 선험적 도덕주의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긴급한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역사의 형성이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역사 이전의 과도기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이슈가 사회적 공론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조절되고 조율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의 영웅적 혹은 유사영웅적 행동에 따라 이뤄지고, 그 때문에 결국 전 사회적 폭력성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김우창적 시각에서 보면, 행동의 사회정치적 차원에 대한
고려보다는 선험적 도덕주의가 앞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어떻게 삶의 사건들을 경험하는가에
서 생각과 판단이 자라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경험 이전에 주어진 틀로 행동의 가능성
을 미리 재단한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선험적 도덕주의의 위험은
경험의 현실적·사회정치적 의미를 외면하는 데 있다.
○ 구조적 사고력
구조적 사고력이란 대상의 전체 국면 혹은 배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맥락적 사고의 능력을
말한다.
참된 주체란 초월적 가능성으로 열린 주체이고, 부단히 자기를 변형해가는 창조적 주체다. 이
를 위해 주체는 시대의 편견이나 상투적 사고,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
기 자신의 현재적 감성과 사고와 언어 그리고 가치의 판단과 쉼 없이 싸워야 한다. 이때의 기
준은 물론 현실이고 그 경험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행동은 일체의 목적과 계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계산과 의도와 책략의 폐해를 의식하고, 이 폐해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
하려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런 거리 유지로부터 어떤 일의 기획도 비로소 투
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는 선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선의를 가능하
게 할 조건들에 대한 부단한 주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의는 자기 자신을 비
우는 데서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 사람은 처음부터 그 결과에 초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체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체념과 무집착 속에서도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고, 더욱
이 그것은 충실하게 완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저성의 바탕은 경험적 사실이다. 나날의 현실을 이루고 인간의 사건을 구성하는 경험적 사
실, 이것이 우리의 감과 사고 그리고 언어와 판단이 겨냥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착근
사실에 철저하다는 것은 경험에 주의한다는 것이고, 쉼 없이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중대
한 것은 현실의 경과 자체가 아니라 이 경과의 속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렇게 파악
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질문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그것은 부정과 허무의 위험을 가져온
다. 그것은 주어진 세계를 괄호 속에 넣고, 그것의 부정 가능을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물음을
묻는 사람은 허공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자기 자신의 서 있는 자리에 대한 물음은 그
자신마저도 허무 속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와 역사의 마당에서도 물음과 물음
이 열어놓은 허무의 차원을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사회와 역사를 굳으 있는 틀이 아니라, 인간
의 자유로운 창조의 소산으로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
둠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이 경이로운 창조이며 사회와 역사가 율법이 아
니라 사랑과 용서의 계약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
서 인용한 글)
삶의 허무한 차원을 만나면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고 세계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
로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허무와의 직면은 때때로, 김우창의 통찰이 보여주듯이, 이 사
회와 역사가 "굳어 있는 틀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의 소산"임을 돌아보게 한다. 어둠
이 인간 삶의 한계로서 불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가능성을 개시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이 경이로운 창조이며 사회와 역사가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계약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무의 바탕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인간의 생애가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용
서의 계햑에 불과한 것"이라는 엄중한 진실이다. 도덕은 단순히 도덕주의 아래 선창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
김우창의 사고가 움직임에 있다고 한다면, 이 움직임은 부분과 전체, 개체와 집단, 개인과 사
회, 구체와 추상, 감성과 이성, 미시와 거시, 사건과 상황, 존재와 부재, 현실과 의식 등등 여
러 방식으로 가능한 다양한 대립항들 사이에 자리한다. 바로 이 사이의 움직임이 의식의 긴장
을 유발하고, 이 긴장 속에서 사유의 에너지는 발생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변증법적 사유의
에너지다.
○ 부정의 변증법
세계가 거짓과 부패로 뒤덮여 있을 때, 김우창의 재구성에 따르자면, 현실에 순응하는 일 이
외에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거짓 세상을 외면하고 초월적 진실로 은둔하는 것, 둘째, 현실
에서 투쟁하는 것, 셋째, "진실의 관점에서 세상을 완전히 거부"하지만, "현실의 관점에서 그것
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 태도
변증법은 하나의 방법이면서 더 나아가 무엇보다도 삶의 자세로 체화되어야 한다. 이 변증법
적 사고에서 움직임-유동성-탄력성-유연함 그리고 리듬과 선율은 결정적이다. 바로 이 리듬과
선율로 하여 김우창의 사고와 언어는 자기 만족적 협애함을 벗어난다.
조화는 불화를 견뎌내야 하고, 긍정은 부정을 관통해야 하며, 일치를 위한 노력은 모순을 외
면하지 말아야 한다. 상치되는 것들에 대한 포섭적 노력이야말로 변증법적 운동이고, 형이상
학적 에너지의 표현이다. 이 변증법적 움직임에 힘입어 우리는 도덕적 수사 밑에 자리한 위선
과 과장과 탐욕을 투시할 수 있다. 도덕적 덕목이란 많은 경우 은폐된 자기 이해의 외적 장식
물인 까닭이다.
○ 전체성에 대한 의식
참된 인간관계가 돈이나 폭력 혹은 윤리가 아닌 '무상적 증여'를 통해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는 것.
세계 문학사적·지성사적 위상 속에서 어떤 자리에 위치하고, 무엇이 결핍되고 어떤 가능성이
탐색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문학과 비평도 자신의 내외적 정당성을 객관화하
기 어렵다.
생명주의
○ 불가항력적 조건과 긍정
유한성의 조건이 인간 실존의 핵심적 요소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제약하는 한계조건이라면, 의미는 죽음을 탐구함으로써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삶에 대해 갖는 의미, 삶과 죽음의 길항관계에 대한 탐색은 가장 중대한 시적
주제의 하나가 된다. 이런 탐색으로부터 생명의 우발성과 이 우발성에도 행해지는 실존적 기
획, 이 기획의 기쁨과 좌절, 자발성의 의미, 반복의 지루함과 도취, 이 도취라는 환각의 헛된
위안, 영속적 생명에의 열망과 의지 등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든, 이 모든 것의 바
탕에는 분명 도저한 허무감과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온갖 기획과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
리는 죽게 되어 있고, 또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조건이 불가항력적 조건이
라면, 이 절대적 조건 앞에서 일하고 웃고 울고 쉬고 취하며 살아가는 삶의 순간 역시 놀라운
것이다.
" 도취없는 평범한 순간도 죽음의 허무에 비하면 한없이 기적적인 것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의 자발성을 정말로 경이로서 대한다면, 생의 모든 순간은 긍정되지 않을 수 없다."
○ 유추 관계
우리는 각자의 주체성이 허용하는 고유한 관점 속에서 다른 주체와 교류할 수 있고, 이런 관
점적 교차를 통해 자기 관점의 교정과 갱신, 확장과 심화를 꾀할 수 있다. 이렇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나의 주체와 타인의 주체 사이에 자리하는 상사적·비유적 관계의
동질성에서 온다. 그리하여 주체는 자기 속에서 자기를 넘어서서 초월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미지의 잠재력이다. 주체는 초월적 자기 구성의 무한
한 가능성 속에서 세계의 전체성에 참여한다.
세계 신뢰
○ 직시하되 너그럽게
언어적 교정 가능성에서 오는 가장 큰 교훈은 "관용성의 교훈"이다.
관용성이란 너그러움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되면 그것은 겸손함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
겸손함이 태도 속에 내장될 때, 그것은 삶의 윤리적 자세, 즉 에토스가 될 것이다.
겸손함이 필요한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누군가에게 우호적이거나 친절하기 위해서만
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련되는 사안이나 경험의 내용을 좀 더 깊게 헤아리게 하는 것이
기에 필요하다. 잘못도니 일에 대하여 겸손의 마음이 아니라 경멸감과 자만심으로 대하는 경
우를 우리는 흔히 보지만, 이런 경우 대응 방식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자만한 사람의 생각이 더 이상 진척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잘
못된 일에 대한 섣부르고 거만한 반응 역시, 마치 이 잘못된 일처럼 잘못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경멸감을 가지고선 사안의 복잡한 굴곡을 더 섬세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너그러움이 사안을 듬성듬성 혹은 대충 넘어가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필요한 것은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견지되는 직시다. 말하자면 현실과의 정면대결
이고, 정확한 이해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사실과의 부단한 싸움이다. 그리고 현실 직시의 자
기 원칙 속에서 타인에게 얼마나 관대함을 견지할 수 있는가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예각적 분별력이란, 줄이자면, 자기 물음을 통해 자기감정에 최대한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성
찰적 노력에 다름 아니다.
반성되지 못한 이념은, 그것이 민족주의로 불리든 제국주의로 불리든 혹은 전체주의로 불리
든, 언제든 폭력화한다.
한국 현대 시의 실패란 경험의 모순을 고려할 수 있는 사고 구조의 실패라는 대목에서도 부분
적으로 다루어졌다. 이것은 더 나아가면, '민족'이나 '통일', '평화'나 '평등' 혹은 '정의'와 같
은 이념을 선호하는, 그래서 이런 이념의 선창과 제시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양 여기는
한국 사회 특유의 명분주의 혹은 순결주의 병리학에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이러한 이념의 표피성에는 말할 것도 없이 피상적 감정과 불철저한 사고가 자리한다. 그리고
이 모든 파편화된 감정과 사고와 이념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 외양화-허세화-내용 부실로 이
어진다. 명분주으의 강고한 체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이 강고한 아집 때문에 사회의 모
순은 끊임없이 은폐되고, 이념의 불순성과의 정면대결이 끊임없이 유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의와 어떻게 만나고 대결할 것인가라는 참으로 중대한 문제의식은 거짓 정열의 구호 아래
파묻히고 만다. 그러나 삶으 조화는 모순과의 대결에 있고, 인간의 자유는 균열과의 싸움에
있다.
○ 상호 유대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 전체성의 회복은 밖으로부터의 강제에 의
하여서가 아니라 본래의 나와 남 사이에 있는바 실존적 결속을 통한 안으로부터의 호소에 의
한 것이라야 한다.” 상호유대를 위한 전체성의 회복은 마땅히 실존적 삶의 내적 필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이념도 그 자체로 옳거나 좋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념은 그 자신의 현실적 적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그 오용과 타락의 위험성도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나날의 현실 속에서 여하한의 권력관계적 개입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렇
게 맞서서 자기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의 정당성은 그것이 자기의 진실성을 경험
과 현실 속에서 입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념
은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험적 의미 체계가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적 상호유대이고, 이런 유대의
공동 근거에 대한 지속적인 상기다.
○ 시의 마음, 사회의 마음
어떤 것도 진부한 채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매 순간 매 단어와 문장 속에서 사실의 너머를
바라보고 현실의 숨겨진 면모를 드러내며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다. 편
견을 줄이고 독단을 막으려는 이러한 언어는 여하한의 지연과 학연 그리고 집단주의로부터 거
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 이 때의 거리란 물론 이미 주어진 조건이나 전체로부
터 이익을 보지 않겠다는 의지다. 혹은 고통이나 불이익을, 그것이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겠다
는 것이고, 이렇게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어떤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것은 일체의 특권의식을 배제한다. 그가 상황이나 일에서 자기 자신을 아무런 지위나 성취의
휘광에 기댐 없이,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앞에
서 말한바, 세계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집착하거나 맹신하지 않는 듯하다. 관련되는 사안을 그때그때 곰곰이 따져보고 헤아리며, 이
렇게 헤아린 후에야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진전시키며, 이 진전의 결과에 따라 사안을 진단하
고 해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명된 결과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을 잊지 않는
다. 더욱이 이때의 언어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하는 것이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
의하는 것이며,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한다. 그럼으로써 결국 자기가 논평한 대상뿐만 아
니라, 이런 자기의 논평 내용으로부터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심 없는 초연함, 그리고 이 초연함을 통한 주어진 특권의 자발적 포기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근본 조건이다.
해석과 반성의 개입을 통해 주체는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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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무사

  • 1. [책소개] 사무사 – 문광훈이라는 저자를 발견한 기쁨 자기쇄신적 기쁨 좋은 책은 이 결의마저 지워버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처음부 터 없었던 것처럼, 좋은 책에는 다짐이나 결의, 교훈이나 주장마저 휘발되어 있다. 그것은 단 지 희미한 여운으로 흔적을 남긴다. 고전은 어떤 것도 강제하거나 설파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떤 메아리가 되어 독자의 심금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자임 하거나 자부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말없는 지속이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사랑의 의지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을까? 신선한 감각과 탄력적 사유 그리고 다채 로운 표현은 곧 삶의 열정 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김우창의 사유가 일체의 어긋남과 치우침 혹은 기울어짐을 경계하는 사유, 다시 말해 생 각함에 비뚤어지고 못된 것을 지우는 사무사의 사유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의 비평 정신 은 사무사의 정신이다. 사무사의 비평 정신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지우고 마음을 비우는 데 서 시작한다. '사邪'란 '간사하다', '기울다', '치우치다'는 뜻이다. 즉 대상을 간사하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파악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울어지거나 치우친 생각을 뜻한다. 생각에 전략과 술수가 들어가 면 편향된다. 그러나 전략과 술수를 부리지 않더라도 사람의 생각에는 어떤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고 이 의도가 사고의 일정한 경사를 야기한다. 그러니까 의도만으로도 사고는 비뚤어질 수가 있다. 발터 벤야민이 '의도 없음' 혹은 '의도를 지우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조건이라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편향된 사고로는 대상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세계는 단순히 분석과 진단과 설명과 주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분석과 아울러 이 분석이 놓 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려할 때, 우리는 세계의 전체, 그 온전한 실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혹은 이렇게 파악된 것이 대상의 일부라고 해도, 이 일부는 결핍과 누락을 헤아리는 이런 정 신으로 인해 전체에 열려 있을 수 있다. 이 열려 있음이 곧 감각의 풍요성과 사고의 객관성 그리고 판단의 공정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행동과 윤리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지만, 마음을 비워내는 영육의 훈련에서 실천은 이미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다. 철저성 ○ 자기물음 김우창은 모든 주어진 물음을 그것이 생겨난 맥락을 헤아리면서도 이 물음을 자기 질문 속에 서 변용시킨다. 다른 논자나 저자의 문제의식도 있는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 루는 문제와 연관하여 일정하게 변조시켜 받아들이고, 이렇게 자기 언어에 담아 그것을 그가 말하려는 논리와 사고의 일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므로 자기 물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물음의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 자기 아집 속에 빠져든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안을 그 자체에서 사고할 뿐만 아니라 그 사안이 자
  • 2. 리한 상황 아래 사고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체성이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부단히 "회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것, 그리고 주체의 재구성이 곧 주체가 처한 상황 자체의 재구성이라는 점이다. 상황은 주체를 규정하면 서 이 주체로 하여금 상황을 규정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자아는 자기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개방적이다. 주어진 관념이나 기준을 마치 교리문답에서처럼, 그대로 반복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독 자적으로 질문하는 것이고, 이 문제를 자기 자신의 기준 아래 자발적으로 고찰하고, 그 자신 의 책임 아래 스스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문제적 자기 물음은, 적어도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그 자체로 주체의 창조적 실천성을 증거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적 문제 제기 혹은 자기 물음 속에서 개체와 일반, 부분과 전체, 개인과 사회, 자유와 필연의 함수관계는 새롭게 재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감정의 정확성 - 선험적 도덕의지의 폭력성 "사회나 정치의 문제"란 "어떠한 의지를 행동에 옮기는 것에서가 아니라, 어떻게 어떠한 통일 적인 행동 의지가 사회적으로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데서 시작하"는일이다. 단순히 각 개인 이 확신하는 바를 사회에 일방적으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다른 사 람과의 상호주관적 관계를 통해 최선의 상태로 점차 조율해가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이다. 직관적, 선험적 도덕주의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긴급한 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역사의 형성이 시작된 시기가 아니라 역사 이전의 과도기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이슈가 사회적 공론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조절되고 조율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의 영웅적 혹은 유사영웅적 행동에 따라 이뤄지고, 그 때문에 결국 전 사회적 폭력성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김우창적 시각에서 보면, 행동의 사회정치적 차원에 대한 고려보다는 선험적 도덕주의가 앞서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어떻게 삶의 사건들을 경험하는가에 서 생각과 판단이 자라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경험 이전에 주어진 틀로 행동의 가능성 을 미리 재단한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선험적 도덕주의의 위험은 경험의 현실적·사회정치적 의미를 외면하는 데 있다. ○ 구조적 사고력 구조적 사고력이란 대상의 전체 국면 혹은 배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맥락적 사고의 능력을 말한다.
  • 3. 참된 주체란 초월적 가능성으로 열린 주체이고, 부단히 자기를 변형해가는 창조적 주체다. 이 를 위해 주체는 시대의 편견이나 상투적 사고,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 기 자신의 현재적 감성과 사고와 언어 그리고 가치의 판단과 쉼 없이 싸워야 한다. 이때의 기 준은 물론 현실이고 그 경험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행동은 일체의 목적과 계획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계산과 의도와 책략의 폐해를 의식하고, 이 폐해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유지 하려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런 거리 유지로부터 어떤 일의 기획도 비로소 투 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는 선한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선의를 가능하 게 할 조건들에 대한 부단한 주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의는 자기 자신을 비 우는 데서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 사람은 처음부터 그 결과에 초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체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체념과 무집착 속에서도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고, 더욱 이 그것은 충실하게 완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철저성의 바탕은 경험적 사실이다. 나날의 현실을 이루고 인간의 사건을 구성하는 경험적 사 실, 이것이 우리의 감과 사고 그리고 언어와 판단이 겨냥해야 할 대상이다. 사실 착근 사실에 철저하다는 것은 경험에 주의한다는 것이고, 쉼 없이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중대 한 것은 현실의 경과 자체가 아니라 이 경과의 속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렇게 파악 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질문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그것은 부정과 허무의 위험을 가져온 다. 그것은 주어진 세계를 괄호 속에 넣고, 그것의 부정 가능을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물음을 묻는 사람은 허공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자기 자신의 서 있는 자리에 대한 물음은 그 자신마저도 허무 속으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사회와 역사의 마당에서도 물음과 물음 이 열어놓은 허무의 차원을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사회와 역사를 굳으 있는 틀이 아니라, 인간 의 자유로운 창조의 소산으로서 다시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 둠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이 경이로운 창조이며 사회와 역사가 율법이 아 니라 사랑과 용서의 계약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 서 인용한 글) 삶의 허무한 차원을 만나면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고 세계를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 로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허무와의 직면은 때때로, 김우창의 통찰이 보여주듯이, 이 사 회와 역사가 "굳어 있는 틀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의 소산"임을 돌아보게 한다. 어둠 이 인간 삶의 한계로서 불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지의 가능성을 개시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어둠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이 경이로운 창조이며 사회와 역사가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계약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무의 바탕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인간의 생애가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용
  • 4. 서의 계햑에 불과한 것"이라는 엄중한 진실이다. 도덕은 단순히 도덕주의 아래 선창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 김우창의 사고가 움직임에 있다고 한다면, 이 움직임은 부분과 전체, 개체와 집단, 개인과 사 회, 구체와 추상, 감성과 이성, 미시와 거시, 사건과 상황, 존재와 부재, 현실과 의식 등등 여 러 방식으로 가능한 다양한 대립항들 사이에 자리한다. 바로 이 사이의 움직임이 의식의 긴장 을 유발하고, 이 긴장 속에서 사유의 에너지는 발생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변증법적 사유의 에너지다. ○ 부정의 변증법 세계가 거짓과 부패로 뒤덮여 있을 때, 김우창의 재구성에 따르자면, 현실에 순응하는 일 이 외에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거짓 세상을 외면하고 초월적 진실로 은둔하는 것, 둘째, 현실 에서 투쟁하는 것, 셋째, "진실의 관점에서 세상을 완전히 거부"하지만, "현실의 관점에서 그것 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 태도 변증법은 하나의 방법이면서 더 나아가 무엇보다도 삶의 자세로 체화되어야 한다. 이 변증법 적 사고에서 움직임-유동성-탄력성-유연함 그리고 리듬과 선율은 결정적이다. 바로 이 리듬과 선율로 하여 김우창의 사고와 언어는 자기 만족적 협애함을 벗어난다. 조화는 불화를 견뎌내야 하고, 긍정은 부정을 관통해야 하며, 일치를 위한 노력은 모순을 외 면하지 말아야 한다. 상치되는 것들에 대한 포섭적 노력이야말로 변증법적 운동이고, 형이상 학적 에너지의 표현이다. 이 변증법적 움직임에 힘입어 우리는 도덕적 수사 밑에 자리한 위선 과 과장과 탐욕을 투시할 수 있다. 도덕적 덕목이란 많은 경우 은폐된 자기 이해의 외적 장식 물인 까닭이다. ○ 전체성에 대한 의식 참된 인간관계가 돈이나 폭력 혹은 윤리가 아닌 '무상적 증여'를 통해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 는 것. 세계 문학사적·지성사적 위상 속에서 어떤 자리에 위치하고, 무엇이 결핍되고 어떤 가능성이 탐색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문학과 비평도 자신의 내외적 정당성을 객관화하 기 어렵다. 생명주의 ○ 불가항력적 조건과 긍정 유한성의 조건이 인간 실존의 핵심적 요소다. 죽음이 삶의 의미를 제약하는 한계조건이라면, 의미는 죽음을 탐구함으로써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삶에 대해 갖는 의미, 삶과 죽음의 길항관계에 대한 탐색은 가장 중대한 시적
  • 5. 주제의 하나가 된다. 이런 탐색으로부터 생명의 우발성과 이 우발성에도 행해지는 실존적 기 획, 이 기획의 기쁨과 좌절, 자발성의 의미, 반복의 지루함과 도취, 이 도취라는 환각의 헛된 위안, 영속적 생명에의 열망과 의지 등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든, 이 모든 것의 바 탕에는 분명 도저한 허무감과 비관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온갖 기획과 열망에도 불구하고 우 리는 죽게 되어 있고, 또 죽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의 조건이 불가항력적 조건이 라면, 이 절대적 조건 앞에서 일하고 웃고 울고 쉬고 취하며 살아가는 삶의 순간 역시 놀라운 것이다. " 도취없는 평범한 순간도 죽음의 허무에 비하면 한없이 기적적인 것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의 자발성을 정말로 경이로서 대한다면, 생의 모든 순간은 긍정되지 않을 수 없다." ○ 유추 관계 우리는 각자의 주체성이 허용하는 고유한 관점 속에서 다른 주체와 교류할 수 있고, 이런 관 점적 교차를 통해 자기 관점의 교정과 갱신, 확장과 심화를 꾀할 수 있다. 이렇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나의 주체와 타인의 주체 사이에 자리하는 상사적·비유적 관계의 동질성에서 온다. 그리하여 주체는 자기 속에서 자기를 넘어서서 초월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미지의 잠재력이다. 주체는 초월적 자기 구성의 무한 한 가능성 속에서 세계의 전체성에 참여한다. 세계 신뢰 ○ 직시하되 너그럽게 언어적 교정 가능성에서 오는 가장 큰 교훈은 "관용성의 교훈"이다. 관용성이란 너그러움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되면 그것은 겸손함으로 나타날 것이고, 이 겸손함이 태도 속에 내장될 때, 그것은 삶의 윤리적 자세, 즉 에토스가 될 것이다. 겸손함이 필요한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누군가에게 우호적이거나 친절하기 위해서만 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련되는 사안이나 경험의 내용을 좀 더 깊게 헤아리게 하는 것이 기에 필요하다. 잘못도니 일에 대하여 겸손의 마음이 아니라 경멸감과 자만심으로 대하는 경 우를 우리는 흔히 보지만, 이런 경우 대응 방식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자만한 사람의 생각이 더 이상 진척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잘 못된 일에 대한 섣부르고 거만한 반응 역시, 마치 이 잘못된 일처럼 잘못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경멸감을 가지고선 사안의 복잡한 굴곡을 더 섬세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너그러움이 사안을 듬성듬성 혹은 대충 넘어가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필요한 것은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견지되는 직시다. 말하자면 현실과의 정면대결 이고, 정확한 이해이며, 앞서 언급했듯이, 사실과의 부단한 싸움이다. 그리고 현실 직시의 자 기 원칙 속에서 타인에게 얼마나 관대함을 견지할 수 있는가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예각적 분별력이란, 줄이자면, 자기 물음을 통해 자기감정에 최대한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성
  • 6. 찰적 노력에 다름 아니다. 반성되지 못한 이념은, 그것이 민족주의로 불리든 제국주의로 불리든 혹은 전체주의로 불리 든, 언제든 폭력화한다. 한국 현대 시의 실패란 경험의 모순을 고려할 수 있는 사고 구조의 실패라는 대목에서도 부분 적으로 다루어졌다. 이것은 더 나아가면, '민족'이나 '통일', '평화'나 '평등' 혹은 '정의'와 같 은 이념을 선호하는, 그래서 이런 이념의 선창과 제시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양 여기는 한국 사회 특유의 명분주의 혹은 순결주의 병리학에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이러한 이념의 표피성에는 말할 것도 없이 피상적 감정과 불철저한 사고가 자리한다. 그리고 이 모든 파편화된 감정과 사고와 이념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 외양화-허세화-내용 부실로 이 어진다. 명분주으의 강고한 체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이 강고한 아집 때문에 사회의 모 순은 끊임없이 은폐되고, 이념의 불순성과의 정면대결이 끊임없이 유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정의와 어떻게 만나고 대결할 것인가라는 참으로 중대한 문제의식은 거짓 정열의 구호 아래 파묻히고 만다. 그러나 삶으 조화는 모순과의 대결에 있고, 인간의 자유는 균열과의 싸움에 있다. ○ 상호 유대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노력에 있어서 전체성의 회복은 밖으로부터의 강제에 의 하여서가 아니라 본래의 나와 남 사이에 있는바 실존적 결속을 통한 안으로부터의 호소에 의 한 것이라야 한다.” 상호유대를 위한 전체성의 회복은 마땅히 실존적 삶의 내적 필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이념도 그 자체로 옳거나 좋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념은 그 자신의 현실적 적용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그 오용과 타락의 위험성도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나날의 현실 속에서 여하한의 권력관계적 개입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렇 게 맞서서 자기를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의 정당성은 그것이 자기의 진실성을 경험 과 현실 속에서 입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현실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념 은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험적 의미 체계가 아니라 인간 삶의 근본적 상호유대이고, 이런 유대의 공동 근거에 대한 지속적인 상기다. ○ 시의 마음, 사회의 마음 어떤 것도 진부한 채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매 순간 매 단어와 문장 속에서 사실의 너머를 바라보고 현실의 숨겨진 면모를 드러내며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다. 편 견을 줄이고 독단을 막으려는 이러한 언어는 여하한의 지연과 학연 그리고 집단주의로부터 거 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 이 때의 거리란 물론 이미 주어진 조건이나 전체로부 터 이익을 보지 않겠다는 의지다. 혹은 고통이나 불이익을, 그것이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겠다 는 것이고, 이렇게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어떤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것은 일체의 특권의식을 배제한다. 그가 상황이나 일에서 자기 자신을 아무런 지위나 성취의 휘광에 기댐 없이,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앞에
  • 7. 서 말한바, 세계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집착하거나 맹신하지 않는 듯하다. 관련되는 사안을 그때그때 곰곰이 따져보고 헤아리며, 이 렇게 헤아린 후에야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진전시키며, 이 진전의 결과에 따라 사안을 진단하 고 해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명된 결과란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을 잊지 않는 다. 더욱이 이때의 언어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하는 것이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 의하는 것이며,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한다. 그럼으로써 결국 자기가 논평한 대상뿐만 아 니라, 이런 자기의 논평 내용으로부터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심 없는 초연함, 그리고 이 초연함을 통한 주어진 특권의 자발적 포기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근본 조건이다. 해석과 반성의 개입을 통해 주체는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