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길찾기 때,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찾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걸 해봤다. 그것이 움직이는 화면과 멈춰져 있는 이미지를 동시에 다룬 첫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정지 된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었고, 가끔가다 찍는 사진도 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7. 이 말을 생각해 봤을 때, 영상이란 멈춰져 있는 이미지가 아니고 눈앞에 있는 하나의 장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화면을 중심으로 해서 앞뒤로 나오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통해서 영화의 내용을 알아챌 수 있는 단서들이 영상 속에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8. 그러니까 ‘움직임은 사라져야 한다.’ 라는 말은 그저 한 번 보이고 사라지는 장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장면이 지나가야 계속해서 새로운 장면들이 나오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 과정을 반복함으로 인해 움직이는 화면을 이해한다. 그러면서 영화 안에 들어가 있는 색깔, 형태들의 변형, 교차되는 화면과 움직임의 흐름에 따라 반응을 하고 각자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9.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가졌고 그래서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보고 또 다른 화면들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시간과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람들은 영상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 공간이 바뀌는 것,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찾는다.
11. 보통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을 필요로 한다. 24개의 순간들이 모여서 1초를 만드는 것이다. 16장의 연속사진이 찍히는 그 숨 가쁜 사이에도 사실은 틈이 있다. 나는 그 8장이 멈춰져 있는 곳에서 움직이는 곳으로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8장의 차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12. 내가 그리고 만든 것을 움직이는 것으로 만들고 싶고, 늘 상상만 해오던 것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움직이고 만들어진 공간에서 시간이 발생하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만들고 싶다.
13. 그림을 그리던 내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지금은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럴 때 나는 물리적인 것이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고, 그래서 그 다음엔 또 어떤 움직임들이 나오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앞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움직임에 대해서 질문해본다.